K/All~R-15

Valentine

류제이르 2016. 2. 25. 23:56

* K 전력 60분 주제 [발렌타인]




()발렌타인 축일로, 연인 간에 선물이나 카드를 교환하는 214. 밸런타인데이가 바야흐로 시즈메를 찾아왔다.

 

 

연인들의 위한 날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번화가의 베이커리에는 하트모양에 밀크, 화이트, 다크 초콜릿 등 다양한 맛의 초콜릿이 진열대에 놓여 있는 것은 물론 달달한 향을 내며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했고, 꽃집에는 아름다운 빨간 장미가 만개한 채 전시되어 있어 연인을 위한 선물을 고민하는 남자, 혹은 여자를 유혹하며 가게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셉터4의 실장, 무나카타 레이시도 그들과 상황이 다르지 않았는데, 다만 한 가지 구별되는 점이 있었다; 남들이 초콜릿을 사야할지 꽃을 사야할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사야할지 고민할 때, 그는 직접 만들어서 줄 계획이었다.

 

 

석판이 파괴되고 난 후, 왕으로서의 힘이 사라지면서 평범한 민간인이 된 무나카타였지만 그는 지금이 왕이었을 때보다 더 좋았다.

 

 

무나카타가 꼭 구하고 싶었던 사람이,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청왕으로서는 베어야 할 상대였으나, 한 개인으로서는 무나카타가 마음에 깊이 담아두었던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파괴적인 성향과 위태로운 바이스만 편차는 그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만들었고, 그 때문에 무나카타는 여러 날을 남몰래 속앓이 해야 했다.

 

 

하지만 그 힘의 근원이 사라지자, 자신을 짓누르고 모든 걸 태워버릴 듯한 붉은 힘에서 드디어 해방되었고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날, 그가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가벼운 미소를 띠며 자신을 말없이 끌어안자 무나카타는 그제야 그가 살아있음에 안도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그의 포옹을 돌려주었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이전에는 서로의 상황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관계를 만들어 나갔고, 오늘은 그들이 연인으로서 함께 맞이하는 첫 기념일이었다.

 

 

석판이 파괴되면서 스트레인 사건도 이제는 거의 드물게 일어나다보니 셉터4의 일거리도 전에 비해 상당히 줄었다. 비록 정부 윗선에서 일감을 몰아서주면 야근을 하는 건 여전했지만, 그래도 평상시에는 그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해 떠 있을 때의 퇴근'이 가능해져 무나카타는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전날 그에게 오늘은 저녁 늦게 집에 와 달라고 연락하자, 단말 너머로 왜 그래야 되냐고 퉁명스레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무나카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면 알게 될 거라는 말과 함께 먼저 연락을 끊은 무나카타였지만 그는 ''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 절로 그려져 쿡쿡 웃었다.

 

 

그는 코트를 벗어 식탁 의자에 걸친 뒤 부엌으로 향했고, 아침에 출근하기 전 조리대 위에 두고 갔던 각종 요리 도구들을 확인했다. 뭐 하나 빠진 것 없이 제대로 다 있는 것을 본 그는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어 팔꿈치까지 접어 올린 후 준비해 두었던 푸른색 앞치마를 입고 냉장고에서 초콜릿 여러 개를 꺼내들고 조리대로 가져갔다.

 

 

레시피까지 화면에 띄워 본격적인 초콜릿 만들기에 들어서기 전, 무나카타는 그가 과연 초콜릿을 좋아는 할까 싶은 짧은 의문이 문득 들었다. 뭐든 잘 먹는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고기였다       그였지만 달달한 것에서는 그가 즐겨 마시는 후르츠 우유에 한정해서만 좋아했다. 지금도 냉장고 한 켠에 차지한 후르츠 우유를 떠올리며 괜한 헛짓을 하는 건 아닌가하는 고민을 한 것도 잠시, 무나카타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어린애 입맛이니 잘 먹겠죠."

 

 

안경을 고쳐 쓰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는 손을 씻은 뒤 초콜릿의 포장을 뜯어 보울에 초콜릿을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

 

 

한 시간 뒤, 집 안팎으로 퍼진 달큰한 초콜릿 향은 무나카타의 집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후각과 미각을 자극했다.

 

 

한 손에 붉은 리본으로 장식된 빨간 상자와 푸른색 끈으로 매듭지어진 상자를 들고 오던 남자, 스오우도 초콜릿 향을 맡고는 멈칫했다 이내 입가에 짙은 미소를 그렸다. 무나카타가 왜 저녁 늦게 오라고 한 것인지 그는 비로소 이해가 갔다.

 

 

사실, 그는 호무라에서 안나에게 초콜릿을 받기 전까진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2층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자고 내려왔더니 안나가 수줍은 표정으로 저를 부르며 건넨 빨간 리본이 달린 상자를 얼결에 받긴 했으나, 웬 상자인가 싶어 안나와 상자를 번갈아 보았더랬다. 그러자 토츠카가 쿡쿡 웃으며 "오늘 밸런타인데이이잖아, !"이라 말하고 나서야 전구가 켜진 그였다. 그런 스오우에게 쿠사나기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니 무나카타 실장한테 줄 거는 준비했나?"

 

"......"

 

"으음, . 설마 준비 안 한 거야?"

 

"표정을 보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몰랐구만."

 

 

그러자 시끄럽다고 일갈한 스오우였고, 쿠사나기는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그리고는 토츠카와 안나한테 감사의 말이나 하라한 뒤 창고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안나가 준 빨간 상자는 오늘 아침부터 토츠카와 안나가 함께 만든 초콜릿이 들어있는 상자였고, 스오우는 망설임 없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고운 딸기 파우더를 입은 파베초콜릿부터 초콜릿 시럽이 유려하게 뿌려진 화이트 초콜릿 등 먹기엔 아까울 정도로 잘 만든 초콜릿이 가득 들어 있었고, 스오우는 따뜻한 미소를 지은 채 안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의 칭찬을 들은 안나의 하얀 얼굴은 발그레하게 물들여졌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 후, 호무라 밖을 나선 스오우는 무나카타에게 줄 선물을 찾으러 번화가로 향했고, 수제 초콜릿 가게에서 말차 초콜릿을 주문한 뒤 그것을 받고 무나카타의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보아하니 집에서 초콜릿을 만든다고 저더러 늦게 집에 오라고 한 것에, 스오우는 왠지 모르게 뿌듯해져 입가에 짙게 그린 호선을 유지한 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직 만든다고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뒷정리 한다고 바쁜 것인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어도 무나카타는 저를 맞이하러 부엌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스오우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잘되었다 싶어 워커화를 벗고 부엌으로 향했다.

 

 

무나카타는 조리대 앞에서 스오우에게 등을 보인 채 열심히 초콜릿을 만드는 중이었다. 등 뒤에 정갈하게 매듭지어진 푸른색 앞치마의 리본과 하얀 셔츠에 셉터4 유니폼 바지를 입은 그의 뒷모습을 조각상 감상하듯 깊은 눈으로 보던 스오우는 식탁 위에다 상자들을 내려놓은 후 무나카타의 뒤로 다가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무나카타는 체에 몇 번 거른 코코아파우더를 초콜릿 위에 뿌리다가 누군가 저를 제 뒤에서 끌어안은 것에 흠칫 놀라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다 스오우인 것을 알고서는 안도한 한편 몸을 완전히 돌려 그와 마주본 뒤, 기척도 없이 들어와서 갑자기 끌어안으면 어쩌냐며 타박했다. 스오우의 "앞치마 입은 네 뒷모습이 꽤나 절경이어서." 라는 말에 얼굴만 붉게 달아올라 본전도 못 찾았지만.

 

 

민간인이 된 후, 왕이었을 때의 스타일 대신 붉은 머리를 차분히 내리고 검은색 롱코트에 안에는 체크무늬 남방으로 매치하는 등 스타일 전반에 큰 변화를 준 스오우를, 무나카타는 싫지 않은 눈으로 보았으나 아까 낯부끄러운 말을 거리낌 없이 한 게 신경 쓰였는지 못마땅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잘도 그런 말을...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기는 합니까?"

 

"아아. 그래서 나보고 늦게 오라고 한 거 아니었냐?"

 

 

쿠사나기가 들었으면 어이없음에 한껏 코웃음 쳤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 자리에 없으니 스오우는 당연하다는 듯 말하며 조리대에 만들어 져있는 초콜릿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무나카타는 그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자각하고 있다는 것에 내심 놀랐다. 그래서 한 번 떠보는 셈치고 그에게 물었다.

 

 

"나한테 줄 건 없습니까?"

 

 

스오우는 대답대신 고개를 돌려 식탁을 가리켰고, 무나카타는 어렵지 않게 빨간 상자 하나와 푸른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딱 봐도 전자는 호무라에서 준 것이라는 게 티가 나서 쿡쿡 웃었으나, 후자는 제 색깔을 상징하듯 준비되어 있는 것에 눈썹을 우아하게 치켜 올렸다.

 

 

설마 정말로 준비해 올 줄은 몰라 무나카타는 흥미로워했다. 매사 무신경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은 그는 스오우가 어떤 걸로 준비해왔나 싶어 식탁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스오우는 무나카타가 가지 못하도록 그의 허리에 감은 두 팔에 더 힘을 주어 안았고, 꼼짝없이 그의 품에 갇힌 무나카타는 미간을 좁히며 비켜라고 두 손으로 그의 탄탄한 가슴을 밀었다. 물론 스오우는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조리대 쪽으로 밀어 붙여 그의 등이 조리대의 모서리와 맞닿게 했다.

 

 

등이 받히는 느낌에 무나카타가 무슨 짓이냐고 하려던 차, 스오우의 얼굴이 가까워지더니 이내 크고 따뜻한 두 손으로 무나카타의 뺨을 감싸고는 그의 입술을 제 것과 겹쳤다.

 

 

입 안을 파고드는 말캉한 감각과 함께 무언가가 제 입 안으로 들어와서 무나카타는 처음엔 흠칫 놀라 스오우의 두 팔을 꽉 붙잡았다. 그러나 혀에서 전해져오는 달달한 맛에 그것이 초콜릿임을 깨닫고는 눈을 감으며 스오우의 목을 두 팔로 감싸 안은 뒤 입맞춤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초콜릿 본연의 맛과 코코아파우더가 간직한 특유의 단맛이 섞이면서 두 사람의 입 안은 오래지 않아 달달한 향과 맛으로 채워졌고, 둘은 느리지도 조급하지도 않은 속도로 단맛을 나누며 서로의 입 안을 훑고 배회했다. 그 열기로 초콜릿은 곧 형체를 잃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입술을 떼지 않고 서로의 혀끝에 남은 단맛을 쫓으려 고개를 기울였고 몸을 바짝 맞닿았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그들의 깊은 입맞춤은 차오르는 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끝내야 했으나, 입술을 뗀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고 이마를 서로 맞닿으며 가쁜 숨을 골랐다. 그러다 무나카타의 붉어진 입술에 묻은 초콜릿의 흔적을 스오우는 놓치지 않고 제 입술로 짧게 훔쳤고, 무나카타가 키스로 붉어진 얼굴로 저를 흘겨보듯 보자 쿡쿡 웃었다. 아직 다 안 만들었는데 먹으면 어쩌냐는 질책에도 스오우는 아랑곳 않고 꽤 맛있다고 평을 해 무나카타를 할 말 잃게 만들었다. 그래도 자신이 만들어 준 걸 맛있다고 해줘서 속으로는 뿌듯해한 무나카타였다.

 

 

"그런데 넌 어떻게 그런 걸 먹냐?"

 

"...뭘 말입니까?"

 

 

뜬금없는 스오우의 물음에 의아해 한 것도 잠시, 스오우는 무나카타를 안고 있던 손을 풀고 식탁으로 가서 예의 푸른색 상자를 갖고 와 무나카타에게 건넸다.

 

 

비로소 상자를 받은 무나카타는 스오우가 무엇을 준비했나 싶어 뚜껑을 열었고, 정갈하게 각 잡힌 채 잘려져 있는 말차 가루를 입은 직사각형 모양의 초콜릿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 취향을 반영한 스오우의 밸런타인 선물에 놀란 무나카타는 그가 아까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이내 쿡쿡 웃었다. 그는 못마땅한 눈길로 초콜릿을 보고 있는 스오우에게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어린애 입맛인 당신에겐 굉장히 썼겠군요."

 

"네 입맛이 이상한 거다. 노인네도 아니고."

 

 

시식용으로 한번 먹어보라며 초콜라티에가 건넨 말차 초콜릿을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가 입 안에 가득 퍼진 쓴맛을 느끼고는 미간을 한껏 구긴 그였다. 그래서 초콜라티에를 노려보았지만 중후한 인상의 초콜릿 장인은 그저 껄껄 웃으며 입가심할 다른 시식용 초콜릿을 건넸더랬다.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는지 스오우는 미간을 다시 한 번 구겼다. 명색이 초콜릿이라면 달아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달기는커녕 말차 특유의 쌉싸르한 맛만 나서 거기에 한껏 데여 역시 말차 같은 건 먹을 게 되지 못한다고 다시금 확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나카타는 쿡쿡 웃고는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스오우의 입에 물려주었고, 흠칫한 스오우는 미간을 좁히며 초콜릿을 빼려고 했으나 무나카타의 손에 저지당했다.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스오우는 여전히 미간을 풀지 않은 채 무나카타를 응시했고, 무나카타는 입가에 짙은 호선을 그리며 스오우의 목에 제 두 팔을 다시 둘렀다.

 

 

그가 물고 있는 초콜릿의 끝부분을 입에 물며 무나카타는 제 몸을 바짝 스오우의 몸과 붙인 후 그의 황금빛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수정 빛을 머금은 아름다운 두 눈은 장난기와 다른 무언가로 반짝인 채로.

 

 

"이번에도 쓰기만 한지 확인해 볼래요?"

 

 

무나카타의 입맞춤 덕분이었을까.

 

 

오래지 않아 스오우의 입 안에는 처음과 달리 다디단 향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