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l~R-15

Happy New Year (전편)

류제이르 2016. 2. 22. 00:05

* K 전력 60분 주제 [새해]

* 후편은 R-18로 이어집니다.




201X년의 마지막 밤.

 


한 해의 마지막을 맞이하면서 동시에 새해의 첫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 시즈메의 중앙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였다. 제법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저마다 두꺼운 패딩과 모자, 장갑 등을 낀 채 추위를 달래며 광장에 설치된 거대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새해까지 딱 1시간이 남았음을 알리는 전자 시계가 초단위까지 띄워져 있었다.

 

 

그 모습을, 광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어느 폐공사장의 높다란 건물에 혼자 앉아 있는 어떤 남자가 무심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아찔한 높이임에도 남자는 아랑곳 않고 담배를 피우며 12월 마지막 밤의 매서운 칼바람을 맞고 있었으나 사실 그 바람은 그에게 전혀 위해가 되지 못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주변으론 붉은 색의 아우라가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 붉은 힘의 주인, 스오우 미코토는 피우던 담배가 끝을 보이자 재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린 후 숨을 깊이 내쉬며 제 옆에 두었던 버본 위스키의 뚜껑을 땄다. 그 위스키는 친우인 쿠사나기 이즈모가 그에게 준 것이다.

 

 

그의 클랜즈맨, 호무라들은 새해 카운트다운을 보겠다며 광장 속 인파들 어딘가에 섞여 있었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곳이나 사람 많은 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스오우는 너희들끼리 가라며 거절했고 쿠사나기와 토츠카는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같이 가자고 제안한 대신 고개를 끄덕이거나 싱긋 웃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아쉬워하는 야타나 다른 호무라 멤버들을 달래며 안나를 데리고 광장으로 향했다. 떠나기 전, 쿠사나기는 이거라도 마시며 목이나 축이라며 그에게 따지 않은 새 버본을 잔 하나와 함께 건넸더랬다.

 

 

얼음도 넣지 않은 채 마시는 위스키가 제법 독할 법도 하건만 스오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목 뒤로 넘겼다. 숙성된 증류주에서 타고 올라오는 오크통 특유의 향이 그의 후각을 자극했고 그 감각을 즐기는 그의 입가에는 보기 드문 기분 좋은 미소가 그려졌다.

 

 

"오야, 오늘 같은 날 혼자 있는 겁니까?"

 

 

스오우는 근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짧게 짓던 미소를 거두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푸른 머리에 제복을 입은 남자가 허공으로 넓고 둥근 푸른 발판을 만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찬바람에 제복 코트의 뒷자락이 펄럭임에도 남자는 아랑곳 않고 입가에는 예의 미소를 띠며 스오우의 앞에서 멈춰 섰다. 그 모습에 스오우는 피식 웃고는 남자에게 물었다.

 

 

"나한테 능력의 사용을 줄여라, 어쩌라고 할 처지가 아니지 않나, 무나카타?"

 

 

나른하면서 느긋한 그의 말에 남자, 무나카타 레이시는 코웃음을 치고는 안경을 위로 고쳐 쓴 후 답했다.

 

 

"누구와는 달리 난 내 힘을 멋대로 쓰지 않거든요. 그리고 통제할 줄도 알고요."

 

 

무나카타는 답을 마친 후 자연스럽게 스오우의 옆에 자리했다. 언제는 자신과 같은 독한 공기를 마시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제 옆에 당당히 앉아 있는 것에 스오우는 다시 한 번 피식 웃은 뒤 말했다.

 

 

"오늘 같은 날은 네 부하들과 같이 있는 줄 알았더니."


"그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각자의 일정이나 선약이 있다고 하는 바람에 무산된 거니, 크게 기뻐하진 마시죠."

 

"신용 받지 못하는군."


"사회성 없는 당신한테서 그런 얘긴 듣고 싶지 않네요."

 

 

스오우의 말을 맞받아치던 무나카타는 그가 한 손에 위스키가 담긴 잔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당신만 입이냐고 자기도 한 잔 달라며 스오우가 미처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의 손에 들려있던 위스키 잔을 갖고 와 마셨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것에 스오우는 잠시 눈을 느리게 끔뻑였으나 이내 낮게 쿡쿡 웃고는 독한 위스키에 미간을 좁힌 무나카타를 보았다. 이런 독한 거를 얼음도 없이 잘도 마신다며 덧붙인 무나카타는 아까 자신이 처음 그에게 던졌던 질문을 다시 언급했다.

 

 

"당신이야말로 오늘 같은 날은 호무라와 같이 보낼 줄 알았습니다만, 의외네요."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서."

 

"저런, 고독한 사자- 인겁니까?"

 

"마음대로 생각해."

 

 

말을 마치며 스오우는 무나카타의 손에 들려있던 잔을 다시 갖고 와 위스키를 다시 채운 후 마셨다. 무나카타는 그의 행동에 짧게 웃고는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저 점으로 보일 정도로 제법 높은 곳이었음에도 두 사람은 여유롭게 그 경치를 즐겼다. 그리고 스오우의 붉은 아우라가 자신까지 감싸는 것에 무나카타는 싫지 않은 미소를 입가에 잔잔하게 띄었다.

 

 

그렇게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지만 그것은 결코 불편한 침묵이 아니었다. 말없이 잔을 서로 가져왔다 줬다하며 버본을 들이키고, 이따금은 그 침묵을 깨고 소소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12311159분이 되었다. 시계를 굳이 보지 않아도 그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안 것은 까마득한 건물 아래로 중앙광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들이 웅성였고 일부는 환호를 지르며 들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멀리 있어도 중앙에 설치된 전광판엔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전자시계가 큼지막하게 떠 있었다.

 

 

이번에도 새해를 제 옆의 사람과 같이 앉아 맞이하는 것에 무나카타는 불현듯 스오우와 처음 새해를 같이 맞이한 때를 떠올렸다.



***



그 해는 그가 새로운 청왕이 되어 셉터4를 이끌어 나가던 해였다. ''이라는 직책을 받고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고 빠르게 적응해 나가던 중 그와 만났고, 그 후 사사건건 그와 만났다하면 도시를 부술 것 마냥 서로 싸워대기에 바빴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달이 흘러 그 해 12월 마지막 날이 찾아왔고, 그 날도 어김없이 무나카타는 스오우에게 사벨을 겨누며, 스오우는 주먹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내며 서로 다투었더랬다. 버려진 어느 공사장 현장에서 흙먼지를 휘날리며 싸우던 그들의 결투는 결국 승부를 가르지 못한 채 비겼고 지친 몸을 이끌며 두 왕권자는 무너진 콘크리트 벽에 기대 털썩 앉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멀리서 많은 이들의 환호성과 함께 하늘 높이 폭죽 여러 발이 쏘아 올려졌다.

 

 

하늘을 수놓는 형형색색의 폭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스오우와 무나카타는 그제서야 비로소 새해가 되었음을 알았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는데, 서로의 행색을 보고서는 피식 웃었더랬다. 그도 그럴 게 옷이며 얼굴에 온통 흙먼지가 묻혀 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스오우는 재킷 안에서 담배갑 하나를 꺼내들어 무나카타에게 던졌다.

 

 

얼결에 받은 담뱃갑에 멈칫한 것도 잠시, 무나카타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제 입에 물었고 다시 그것을 스오우에게 던졌다. 그리고 코트 주머니에서 제 라이터를 꺼내려던 차 물고 있던 담배 끝에서 불이 화르륵- 붙어 잠시 놀랐다. 고개를 돌리니 어느 새 스오우도 입에 불이 붙은 담배 하나를 문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입꼬리 한 쪽을 올린 특유의 미소가 지어져 있었고, 무나카타는 피식 웃은 후 고개를 저으며 폭죽이 터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게 두 사람이 처음 함께한 새해맞이였다.


 

***



그 날 후부터 마치 연례행사처럼 무나카타는 스오우와 함께 새해를 맞았다. 그래도 첫 1,2년은 서로 피 튀기듯 싸우다 그때와 같은 장소, 혹은 다른 곳에서 새해를 맞이했지만 다음해, 또 그 다음해는 어떻게 된 건지 싸우지 않고 지금처럼 평화롭게 맞이했다. 무엇이 그들의 새해맞이를 바꾸었나 싶다가도 그 일련의 변화가 그리 나쁘지는 않아 무나카타는 쿡쿡 웃었다. 거기에 스오우가 왜 그러냐며 묻자 그는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고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래에선 이제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10

 

 

스오우는 저를 보고 있는 무나카타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왜 웃은 거냐고 재차 물었어도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입가의 웃음기는 여전히 머금은 채였다.

 

 

9


 

"나한테 뭐 할 말 있냐?"

 

"글쎄요."

 

 

8

 

 

모호한 답변에 스오우는 미간을 좁혔다.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고 두루뭉술한 답을 내놓은 그가 마음에 안 들어서였다.

 

 

7

 

 

뚱한 표정을 지은 그의 모습에 무나카타는 다시 쿡쿡 웃었다. 이 남자도 이런 표정을 지을 줄을 알구나, 생각하며 그는 서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6

 

 

"스오우."

 

 

"?"

 

 

5

 

 

스오우는 점점 제 앞으로 몸을 기울이는 무나카타를 보고서는 멈칫했다. 이 녀석이 벌써 취했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봤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자수정 빛을 담은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고, 또 빛났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대충 짐작이가 그가 하는 양을 그저 말없이 지켜봤다.

 

 

4

 

 

무나카타는 웃음을 삼키며 생각했다.

 

 

지금 제 눈앞의 남자는 첫 만남에서부터 적대감을 느낀 남자였다. 마치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자신과 그는 반목했고 사사건건 대립했다. 자신들에게 '화합'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었다.

 

 

3

 

 

이제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할 정도로만 남았다. 저를 그윽이 보는 황금빛 두 눈을 마주보며 무나카타는 눈을 서서히 감았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2

 

 

이 남자와 함께 보내고 싶다. 가랑비에 젖는 옷처럼 서서히 제 마음에 스며든 그와 함께. 그리고 내년에도.

 

 

1

 

 

다음해 이맘때에도 그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을 담으며, 무나카타는 먼저 그 좁은 간격을 없앴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와 입술이 겹쳐진 순간 그들의 머리 위로 몇 해 전의 그 날처럼, 형형색색의 폭죽이 쏘아 올려졌다.

 

 

그때와 다른 것이라면, 그때는 폭죽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그 폭죽을 배경 삼아 부드럽고 깊은 입맞춤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촉촉- 입술을 짧게 닿았다 뗐다를 반복한 무나카타는 이내 스오우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었고, 스오우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입 안을 파고들었다. 스오우에게선 그가 평소에 즐겨 피는 담배의 맛과 위스키가 합해진 맛이, 무나카타에게선 말차 특유의 쌉싸르함과 버본의 맛이 어울러져 독특한 맛이 났다. 입맞춤이 길어질수록 둘은 서로의 혀끝과 입 안에서 감도는 맛에 깊이 빠져들었고 마치 서로 놓치기 싫다는 듯 스오우는 오른손을 들어 무나카타의 뒷목을 붙잡았고, 무나카타는 왼손으론 그의 뺨을 감싸고, 오른손으론 그의 어깨를 붙잡은 채 혀를 얽었고 오묘한 맛이 섞인 타액을 나누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그들의 입맞춤도 차오르는 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끝을 맞아버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입술만 뗐고 그 이상 간격을 넓히지 않았다. 서로 이마를 맞댄 채 푸스스 웃던 중 스오우는 이제 양손을 무나카타의 목 뒤로 가져다 댄 후 그의 뺨을 두 엄지로 부드럽게 쓸었다. 그 손길에 고개를 기댄 무나카타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며 가볍게 촉- 입을 맞춘 후 말했다.

 

 

"Happy New Year, Suoh."

 

 

입술을 맞닿은 채 건넨 그의 새해 인사에, 스오우는 대답 대신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띠며 붉어진 그의 입술에 다시 제 입술을 겹쳤다.